손 끝의 예술: 론 뮤익의 예술 세계
디지털 기술이 점차 정교해지는 시대이지만 ‘손’으로 빚어낸 작품이 주는 감동은 결코 따라갈 수가 없다. 손을 움직여 무언가를 만든다는 것은 끊임없는 반복의 싸움에서 숙련을 얻고, 그 과정 끝에 결국 아름다운 결과물을 창조한다. 기계는 결코 흉내 낼 수 없는 수작업에서 오는 불균형 속의 조화로움 또한 너무나 아름답다.
디지털 도구들이 점차 발달할수록, 그것들이 재현해낼 수 없는 손끝에서 만들어내는 예술의 가치가 더욱 도드라질 수 밖에 없다. 기계가 모방할 수 없는 감정과 의식이 손 끝에 스며 있기 때문이다.
국립현대미술관의 2025년 전시 계획 발표 당시부터 관람객들의 기대를 모은 세계적인 거장 ‘론 뮤익’의 전시가, 현재 개막 이후에도 많은 발길을 이끌며 성황리에 진행 중이다. 이번 전시는 국립현대미술관 서울관과 프랑스 까르띠에 현대미술재단의 협력으로 공동 개최되었다.
이 전시는 호주 출신 조각가 론 뮤익의 아시아 최대 규모 회고전이다. 작가의 대표작 10점을 비롯하여 작업실을 촬영한 사진 12점, 그리고 오랜 인고의 작업 과정을 담은 다큐멘터리 필름 두 편을 볼 수 있는 값진 전시이다. 극사실주의 조각의 정점에 선 그의 작품은, 하나하나 자세히 들여다볼 때마다 섬세한 디테일로 인해 놀라움과 경이로움을 자아낸다.
사진으로는 가늠할 수 없는 작품의 다양한 크기는 실제로 가서 내 눈으로 확인해야 비로소 알 수 있다. 작든 크든 너무나 섬세한 손길로 완성했기에 사진만으로는 그 실제 스케일을 짐작하기 어렵다.
그의 작품을 마주했을 때, 한 올 한 올 심었을 수많은 머리카락과 속눈썹, 피부의 미세한결, 숨구멍 같은 디테일은 말할 필요도 없다. 그보다 더 놀라웠던 것은 그 섬세함 너머로 인물들의 ‘삶의 서사’가 읽혀졌다는 사실이다.
작가는 작품에 대해 특별한 설명을 덧붙이지 않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인물의 몸짓과 손끝, 눈빛, 표정, 자세 등의 요소들이 많은 이야기를 들려준다. 단순히 극사실주의의 ‘정교함’으로만 설명할 수는 없는 깊이가 느껴진다. 그의 작품에서 나도 한때 겪었을 감정과 표정을 발견할 수 있었다.
이번 전시의 대표작으로 꼽히는 는 2017년 멜버른의 빅토리아 국립미술관의 의뢰로 제작되었다. ‘Mass’라는 단어는 더미, 무더기, 군중을 의미할 수도 있고, 종교의식을 뜻할 수도 있다. 미술사에서 두개골은 인간 삶의 덧없음을 상기시키지만, 동시에 대중문화에서 흔히 등장하며, 고고학적 발견을 떠올리게 하기도 한다. 죽은 자에 대한 경외심을 불러일으킬 수도 있고, 근현대사의 비극적 사건들을 연상시킬 수도 있다.
국립현대미술관에서는 이 거대한 100개의 해골 더미를 14m 천장까지 쌓아 마치 지하 무덤의 터를 발견한 듯한 인상을 준다. 해당 작품은 다양한 해석과 가능성을 열어두고 기획된 작품으로 공간과 특별한 상호작용을 할 수 있도록 매번 설치될 환경에 맞게 변형해서 설치한다고 한다. 크게 두 개의 관으로 나뉘어 전시하고 있는데, 첫 관의 마지막을 장식하는 작품으로 큰 임팩트를 남기고자 한 작가의 의도가 엿보인다.
오랜 인고의 시간을 담은 다큐멘터리 영상은 전시의 가장 마지막 순서에 위치해 있다. 프랑스의 사진 작가이자 영화감독 고티에 드볼롱드(Gauthier Deblonde)가 무려 18개월간 촬영한 영상이다. 여러 개의 작업이 어떻게 점진적으로 완성되어 가는지를 아주 조용하고 담담하게 그려내고 있다. 작가 작품의 제작 방식과 재료, 과정 등이 궁금하다면 이 영상을 통해 작가의 작품 세계를 더욱 깊이 이해하고, 그의 예술적 철학을 엿볼 수 있다.
30년에 걸쳐 완성된 작품이 고작 48점에 불과할 정도로, 그의 작품은 극도의 기술적 완성도와 정교한 예술적 표현을 담고 있다. 대량 생산이 일상이 넘쳐나는 시대 속에서 정성스럽게 손으로 만든 한 점의 가치가 더욱 깊이 다가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