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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용자 경험 시대의 핵심 경쟁력은 사용자

등록일 2025-11-19 작성자 김다은 조회수 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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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용자 경험 시대가 시작된 순간

포춘(Fortune)은 2020년, 아이폰을 현대 최고의 디자인 100(The Greatest Designs of Modern Times) 중 1위로 선정했다.
아이폰은 단지 디자인이 혁신적인 휴대전화가 아니었다. 그것은 기술의 시대를 넘어, 경험의 시대가 열렸음을 알린 신호였다. 아이폰을 전후로 인류의 디지털 경험은 완전히 달라졌다. 그 신화의 시작점으로 돌아가보자.

2007년 LG는 세계 최초로 전면 터치폰인 프라다폰을 출시했다. 아이폰 보다 석 달이 빠른 시점이었다. 하지만 사용자는 아이폰을 선택했다. 아이폰을 접한 뒤에야 비로소 사람들은 자연스러운 경험이 무엇인가를 느끼게 되었다.
핀치 투 줌(Pinch to Zoom), 바운스백(Bounce Back)* 등 손가락의 움직임에 따라 폰이 자연스럽게 반응하는 상호작용을 디자인한 사람은 애플의 UI디자이너 바스 오딩(Bas Ording)이다. 그의 '915 유틸리티' 특허는 기술 특허로 등록되었지만 실은 사용자경험디자인(UX Design)이었다.
Pinch to Zoom : 두 손가락을 화면에 대고 서로 벌리거나 좁히는 제스처로 확대(zoom in), 축소(zoom out)하기.
Bounce Back : 스크롤 가능한 콘텐츠에서 사용자가 콘텐츠의 끝까지 스크롤을 시도할 때, 더 이상 이동할 수 없는 한계를 넘어서면 화면이 살짝 더 움직였다가 다시 원래 되돌아오게 하는 것. 마치 고무줄을 늘렸다가 놓으면 튕겨 돌아오는 것 같은 시각 효과를 줌.
2012년 8월 24일, 미 법원은 삼성이 애플의 사용자 경험을 따라했다고 판단해 10억 5,000만 달러(약 1조 3천억 원) 배상하라고 평결했다. 약 7년의 특허 분쟁 후 최종적으로 5억3,900만 달러(약 6,000억 원)을 지급하며 사건은 종결되었다. 삼성은 이를 계기로 UX의 중요성을 인식하게 되고 사용자경험디자인 전문인력을 대폭 보강하게 된다.

이 사건은 사용자 경험 시대가 시작되었음을 알리는 선언과도 같다. 경쟁력의 무게중심은 공장에서 시장으로, 공급자에서 사용자로 옮겨왔다. 기술 진보는 차별성을 없앴고, 차별화의 마지막 남은 영역은 경험의 질감이 되었다. 그럼에도 여전히 많은 기업은 공급의 언어로 사고한다. 효율화, 표준화, 자동화, 최적화 같은 단어가 오가고, 사용자는 마지막 검증 단계에서나 언급된다. 이런 구조에선 사용자의 감정·불편·선호가 우선되기 어렵다.
사용자야말로 생산의 경쟁력을 높일 수 있는 가장 중요한 자원이다. 그들의 반응과 데이터, 불만과 칭찬은 새로운 R&D의 재료다. 사용자가 느끼는 미세한 감정을 알아차리는가 못하는가의 차이는, 글로벌 시장에서 수조 원 이상의 격차를 만든다. 그렇게 중요한 자산을 우리는 이미 가지고 있다.

 

한국 산업 경쟁력의 소중한 자산, 사용자

한국 수요시장은 전 세계 기업들이 테스트베드(Test-bed)로 꼽는 가장 까다로운 시장이다. 한국 소비자는 신제품에 빠르게 반응한다. OECD와 BCG의 분석에 따르면, 신기술·신제품의 수용률(early adoption rate)은 세계 3위 수준이며, 디지털 서비스의 피드백 주기는 선진국 평균보다 세 배 빠르다. 제품이 출시되면 하루도 채 지나지 않아 리뷰와 비교 영상이 올라오고, SNS에는 사용 후기와 불만이 실시간으로 쏟아지면서 밈으로 퍼진다. 제품/서비스의 완성도를 실시간으로 진단하는 집단 품질관리 시스템이라 할 만하다.

한국 수요시장은 세 가지 특징으로 요약된다.
첫째, 감각적이고 민감하다사람들은 UI의 색 대비, 소리의 높낮이, 버튼의 위치, 촉감의 질감까지 세심하게 평가한다. 감각적 완성도에 예민하며, 작은 위화감도 즉각 포착한다.
둘째, 반응 속도가 매우 빠르다. 집단적 피드백이 빠르고 강렬하다. 한 가지 불편이 온라인 커뮤니티를 통해 단시간에 공론화된다. 반응의 속도는 공급자를 압박하는 도전으로 작동한다.
셋째, 비교하는 문화가 강하다. 경쟁 제품 간의 미세한 차이를 감지하고, 이를 즉각 비교해 품질의 우열을 가른다. 문화적으로 형성된 비교 감수성, 즉 미세한 차이를 즉각 인식하고 논평하는 문화가 있다.
이 세 가지 특징이 결합된 시장은 세계적으로 드물다. 제품을 경험 단위로 소비하고, 감정적으로 반응하며, 그 결과가 주가와 브랜드 가치에 반영되는 시장이 한국이다.

경제학적으로 보면 한국 시장은 인구 규모에 비해 상대적으로 높은 제품 다양성을 가지고 있다. 소득 수준이 높고, 디지털 인프라가 촘촘하며, 소비자 간 정보 교류가 빠르기 때문이다. 이런 토양이 감각적 민족(Micro-sensitivity nation)을 만들어 낸다. 한국의 사용자는 디자인·기능·경험의 차이를 감각적으로 구별해내고 그 판단을 즉시 공유하고 증폭시키는 생태적 구조를 갖는다. 그 결과 한국 수요시장은 기술과 감성이 교차하는 세계 최고 수준의 감각의 실험실, 사용자 경험 R&D의 최전선이 된다. 
얼마전, 한국 수요시장이 얼마나 특별한지를 다시 확인할 수 있는 사건이 벌어졌다.

 

카카오톡 업데이트가 남긴 흔적

2025년 9월 23일, 카카오톡은 15년 만에 SNS형 피드 중심으로 사용자 인터페이스를 대대적으로 개편했다. ‘친구탭의 SNS화’, 즉 메신저 중심 구조에서 인스타그램과 같은 피드형 SNS 인터페이스로 전환한 것이다. 지인들의 프로필 변경이 실시간으로 노출되는 등 사용자 경험 디자인의 급격한 전환에 따른 거부감은 컸고 사람들은 즉각 반응했다. ‘1점 리뷰’가 폭주했다. 피드형 구조를 광고 노출을 위한 장치로 해석하는 여론도 번졌다. 개편 일주일 만에 카카오 주가가 9% 이상 하락하면서 시가총액이 수조 원 단위로 증발했다. 사용자 경험의 변화가 소비자 감정으로, 감정이 시장 가치로 전이된 것이다.
이 사건은 'UX는 곧 신뢰'라는 사실을 실증적으로 보여준다. 버튼의 위치, 정보의 노출, 시선의 흐름 - 이 모든 것은 사용자의 심리적 안정감과 연결되어 있다. 한국의 사용자들은 그 미세한 차이를 읽고, 즉시 반응하며, 집단적 공감으로 증폭시킨다.

 

세계의 테스트베드가 된 한국 수요시장

해외에도 사용자경험 디자인의 개편은 흔한 일이다. 하지만 우리나라 같은 반응은 흔치 않다. X(구 트위터)의 브랜드 교체, 스냅챗의 인터페이스 개편, 메타의 피드 알고리즘 조정이 대표적이다. 미국이나 유럽 사용자들은 불만을 표시했지만, 한국만큼 그것이 기업의 가치나 매출, 주가에 즉시 큰 폭으로 반영되는 일은 드물다.
세계 주요 기업들은 새로운 서비스를 출시하거나 기능을 시험할 때 한국을 전략적 테스트베드로 선택하고 있다. 
스타벅스 코리아는 2014년, 세계 최초로 모바일 사전주문 서비스 사이렌오더(Siren Order)를 상용화했다. 이 서비스는 한국에서 폭발적인 반응을 얻은 뒤, 미국 본사에 역수출되어 글로벌 표준이 되었다.
나이키는 서울 홍대에 세계 첫 Nike Style 매장을 열었다. 이곳은 젠더리스 제품, 콘텐츠 제작 스튜디오, 지역 기반 커뮤니티를 결합한 새로운 리테일 UX 실험장이었다. 한국 소비자의 공간 경험 반응을 측정하기 위한 전략적 선택이었다.
구글은 2021년, 전 세계에서 처음으로 한국에서 대체결제(User Choice Billing) 제도를 시행했다. 정책적 UX 실험이자, 소비자 선택권에 대한 사회적 반응을 관찰하기 위함이었다. 이 외에도 글로벌 기업들은 한국 시장을 UX·CMF 최종 검증의 현장으로 활용하고 있다. 여기서 살아남는다면 세계 어디서도 통할 것이기 때문이다.

 

수요자 특성을 산업의 강점으로 활용할 전략을 마련하자

한국 소비자는 정밀한 시장 감각의 집합이다. 우리에게 주어진 이 특별한 강점을 우리는 전략적으로 관리하지 않고 있다. 그 민감성을 국가의 전략자산으로 편입해야 한다. 이 감각을 체계적으로 수집·분석하고, 산업정책과 서비스디자인에 연결한다면, 한국은 단순한 소비국이 아니라 사용자경험의 센서 국가가 될 수 있다. 
구체적으로 다음 세 가지 방향의 전략이 필요하다.

첫째, 정책 차원의 사용자 반응 데이터 허브 구축이 필요하다. 사용자의 반응 데이터를 공공 인프라로 통합해야 한다. 지금의 사용자 피드백은 민간 플랫폼에 흩어져 있고 그중 상당수는 폐쇄된 채 사라진다. 사용자 피드백, 리뷰, UX 반응 데이터를 산업별로 통합·분석하면 실시간 사용자 인사이트 자산이 된다. 정부가 이를 표준화해 산업별로 활용할 수 있는 UX 데이터 허브를 구축한다면, 한국은 세계 어디에서도 구할 수 없는 실시간 사용자 인사이트를 확보할 수 있을 것이다.

둘째, 디자인R&D를 사용자 욕구 조사와 검증 단계까지 확장해야 한다. 기술 개발보다 감각 개발이 먼저다. 제품이나 서비스를 완성한 뒤 테스트하는 것이 아니라, 초기 단계부터 사용자 반응을 수집하고 데이터를 학습해 감정 반응의 패턴을 설계에 반영해야 한다. 이렇게 할 때 비로소 디자인주도 R&D가 가능하며, 이는 생산성 중심의 경쟁력을 넘어 시장 적합성(Product–Market Fit)을 높인다.

셋째, 사용자 경험의 품질을 측정할 수 있는 공공 기준이 필요하다. 지금까지의 인증은 기술, 안전, 품질 중심이었다. 기술인증이나 품질인증만으로는 시장의 감각적 기준을 반영할 수 없다. 사용자에게 얼마나 자연스럽게 느껴지는가, 얼마나 신뢰를 주는가와 같은 경험 지표가 산업 경쟁력의 새로운 기준이 되어야 한다. 이를 제도화하는 국가 UX 인증제는 공공서비스부터 산업제품까지 모두를 아우르는 경험의 국가표준이 될 수 있다. 한국 사용자에게 신뢰받은 경험이라는 새로운 품질 기준이 필요한 시점이다.

오늘 한국에서 외면받은 제품은 내일 글로벌 시장에서도 실패한다. 반대로, 한국 사용자의 마음을 얻은 서비스는 전 세계 어디서도 통한다. 따라서 한국 수요시장은 글로벌 감각 인큐베이터(Global Sensitivity Incubator)로 정의되어야 한다. 국가가 이를 전략적으로 관리하고, 산업이 데이터로 연결될 때 우리는 더 이상 빠른 소비자의 나라가 아니라 세계가 검증을 맡기는 감각의 강국이 될 수 있을 것이다.

AI로 인해 새로운 기술 전환의 시기가 도래하고 있다. 그러나 기술이 사용자에게 도달하지 못하는 가장 큰 저항은 여전히 같다.
접근성, 사용성, 인터페이스디자인. 이 모든 것은 사용자경험디자인의 문제다. 결국 AI의 시대에도 기술의 완성은 경험의 설득력에 달려 있고 그 문을 여는 열쇠는 언제나 사용자에게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