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UX는 사람에 대한 고민입니다. 그렇기에 해야만 하는 일입니다”
진영규 신한은행 고객경험혁신센터 팀장 인터뷰
성과, 지표, 노하우. 우리가 주목하는 것들입니다. 그러나 귀를 기울여야 할 게 정말 이 뿐일까요? 어떤 태도로 나의 업(業)을 대하고, 어떤 관점으로 살아가야 할지… 전문가의 삶에서 발견할 수 있는 건 이 같은 ‘방향에 대한 실마리’이기도 합니다. 사람-in은 그들의 생각과 태도, 이야기에 집중합니다.


HCI 학회에 모인 4대 금융지주의 CX 조직 리더들. 가장 좌측이 진영규 신한은행 고객경험혁신센터 팀장이다(사진=디지털 인사이트)
지난 겨울, HCI(Human-Computer Interaction) 학회 참가를 위해 찾은 강원도의 한 리조트에서 신한은행 고객경험혁신센터의 진영규 팀장을 처음 만났다. 4대 금융지주의 CX(Customer Experience) 조직 리더들의 합동 세션 직후였다.
“UX(User Experience)는 인문학 같습니다. 사람에 대해 고민하는 일이니까요.”

1년에 가까운 시간 만에 다시 만난 진영규 신한은행 고객 경험혁신센터 팀장(사진=디지털 인사이트)
그날 진 팀장이 건넨 말이다. 여유가 없어 길게 이야기를 나누지는 못했지만, 종종 ‘인문학’이라는 비유가 생각났다. 그래서 날이 쌀쌀해진 10월 어느 날 다시 그를 만났다. 인문학과 같다는 UX가 그에게 어떤 의미인지 탐구하기 위해.
25년 했지만, 여전히 즐겁다

아이폰을 발표하는 스티브 잡스. 아이폰을 기점으로 일반 대중에게 UX의 개념이 퍼지기 시작했다(자료=new york megazine)
25년. 진 팀장이 UX 디자이너로 걸어온 시간이다. 아이폰 출시를 계기로 UX의 개념이 일반 대중에게 알려진 게 2007년 즈음인 걸 감안하면 진 팀장의 커리어는 이보다도 몇 년 빨랐다. 국내에 개념의 씨앗이 움틀 때부터, UX가 자리잡고 CX라는 용어까지 가지를 뻗는 과정을 그대로 경험한 증인인 셈이다.
대학 재학 시절 진 팀장은 생명과학과 전산학을 복수 전공했다. 코딩에 흥미가 있어 삼성전자의 ‘소프트웨어 멤버십’에 참여했고, 그곳에서 HCI에 대해 배웠다. 그 작은 선택이 삼성전자 소프트웨어 그룹 산하 UI 그룹 입사로 이어졌다.
“HCI에 ‘Human’이라는 단어가 있잖아요. 막연하게 인간적인 것에 대해 배울 수 있을 것 같았어요.”
신한은행 이직 전까지 내리 삼성전자를 다녔다. 조직명과 부서가 달라지는 동안에도 UX에 대한 탐구는 변함 없었다. 인간에 대한 탐구가 필요하다는 생각에 재직 중 인지과학 석사 학위를 취득하기도 했다. 20년이 넘는 긴 시간이었다. 지치거나 지루하지 않았던 걸까.
“즐거웠어요. 아이폰 같은 이벤트도 계속 있었고, UX라는 도메인도 계속 발전했으니까요. UI로 시작해 UX가 됐고, 이제 CX를 이야기해요. 질릴 새가 없었어요. UX의 학문적 매력도 흥미로웠습니다. UX는 ‘다학제(多學際)’적인 학문이거든요. 예술, 공학, 디자인, 심리학… 다양한 전공의 사람이 모여 여러 생각이 교차하고, 매일 에너지가 만들어지는 매력 말이죠.”
생명과학, 전산학, 인지과학… 계속해서 연구하고 탐구한 사람다운 관점이다. 그렇다면 UX 디자이너로써 좋아하는 학문을 일로 대하며 산다는 건 어떨까. 어떤 보람이나 즐거움이 있을까.

진 팀장은 사람의 삶에 의미 있는 도움을 줄 수 있다는 게 UX 디자이너가 느낄 수 있는 보람이라고 말한다(사진=디지털 인사이트)
“UX는 사람에 대한 일입니다. 사람에게 도움이 되기 위한 일이죠. 그래서 직접 고객을 만나며 그들의 삶에 도움을 줄 수 있는 가치를 만들어가요. 그게 참 보람 있습니다.”
‘인간의 삶에 대한 관심’. 그게 UX를 바라보는 진 팀장의 뿌리다. 그는 UI에서 UX로의 확장은 화면 밖에 있는 인간의 경험을 바라보겠다는 욕구의 결과라고 설명한다. 더 나은 삶을 위한 UX 디자이너의 본능적인 열망인 셈이다.
“Don’t Study Design. Study Life. 좋아하는 말입니다. 2000년대 중반에 수원으로 삼성 조직 대부분이 이전할 때도 버텼습니다. 출퇴근 버스를 타고 수원으로 가면 근처에 공장만 보여요. 삶이라는 걸 관찰하고 경험할 기회가 없잖아요. 그래서 못 간다고 PT도 하고 그랬죠. 결국 수원으로 갔지만.” 진 팀장이 웃었다.
22년 2개월의 순간, 새로운 도전이 고팠다
수원 이전에 버티던 시절을 회상하던 진 팀장의 눈이 빛났다. 그는 삼성전자에서 22년 내내 진심이었을 거다. 그런 사람의 눈빛이다. 그렇다면 왜 새로운 도전을 선택했을까.
“새로운 걸 해보고 싶었습니다. 삼성전자에 22년 2개월을 다녔어요. 제 나이에 새로운 도전을 할 기회는 많지 않습니다. 어쩌면 마지막 기회일 수도 있겠다, 그런 생각이었죠. 전사 표준을 잡고, 사업부에 방향을 제안하는 큰 단의 일을 하면서 열심히 한 고민이 실제 고객에게 전달되는 경험이 옅어진다는 아쉬움이 있었습니다. 공들인 고민이 고민에서 끝나는 경우도 많았고요. 그런 허무함이 마음에 누적되면서 사업부로 자리를 옮겼고, 그곳에서 만난 인연이 새로운 기회로 이어졌습니다. 삼성 안에서 부서를 옮기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환기가 될 수 있었지만, 결국 이직을 결정하게 된 건 그 인연과 새로운 도전을 하고 싶은 마음 때문이었습니다.”
2022년 4월 만들어진 고객경험혁신센터에 진 팀장이 합류한 건 8월이었다. 아직 신생 조직이었다. 각 조직에 흩어져 있던 UX 인력을 한 명 한 명 모으던 때다.
“UX의 중요성을 조직 전체에서 공감했기 때문에 고객경험혁신센터가 만들어졌습니다. 타 은행과의 경쟁에서 우위를 점하기 위해서는 UX가 필요하다, 그런 중대한 필요로 만들어진 조직입니다. 그 뒤로 3년 정도 흘렀네요. 그동안 SOL 뱅크, SOL 글로벌, SOL 미니 등 다양한 서비스들 사이에 일관성을 만드는 작업을 해왔습니다. UX 디자이너의 목소리가 점점 프로덕트에 담기고 있죠. 고객 경험의 측면에서 유의미한 변화라고 생각합니다.”
UX에서 CX, 변함 없이 가장 중요한 건 맥락 설계라는 본질
고객 경험이라는 단어. 문득 생각하니 진 팀장의 센터는 UX가 아니라 CX라는 표현을 쓴다. 그 이유는 뭘까.
“UI에서 UX로의 변화를 보면 ‘Interface’가 ‘Experience’가 된 겁니다. UX에서 CX는 ‘User’에서 ‘Customer’가 된 거죠. 경험에 대한 중요성을 생각한 변화가 한 번, 이제 주어에 대한 변화가 한 번 일어난 겁니다. User(사용자)는 디지털 사용자를 떠올리게 하는 용어입니다. Customer(고객)는 그렇지 않죠. 은행의 관점으로 보면 SOL 뱅크 앱을 쓰는 사람은 유저, 영업점에 방문한 사람은 고객입니다. 고객의 경험을 디지털에 국한해 고민할 필요가 있는가, 그 질문의 결과물입니다.”

시니어 고객 맞춤 디지털 영업점인 신한은행 신림동지점. CX로 확장된 개념은 이처럼 앱 이외에도 영업점 등 여러 오프라인 경험을 포괄한다(사진=신한은행)
UX에서 CX로 확장된 개념은 보다 많은 영역을 포괄하고 있다. 앱 사용 경험, 영업점을 방문했을 때의 경험, ATM, 기업의 브랜딩… 총체적인 경험에 대한 고려다. 이를 위해 조직에 합류한 직후 가장 먼저 한 것도 CX라는 상위 개념에 대한 조직 내부의 공감대를 형성하는 일이었다.
“CX 고도화를 위해 가장 먼저 고객경험혁신센터라는 조직이 같은 생각을 가져야 할 필요가 있었습니다. ‘금융의 본질’ ‘혁신 주도’ ‘사회적 역할’이라는 세 가지 CX 설계 원칙을 확립하는 걸 우선적으로 했죠. 그런 철학에 맞게 전체적인 디자인 시스템을 정비하는 작업을 했고, 지금도 이어가고 있습니다.”
진 팀장은 CX 원칙이 적용된 예로 ATM에 대한 이야기를 꺼낸다. 신한은행 ATM 기기에는 ‘일반 상담’과 ‘수화 상담’ 버튼이 존재했다. 청각장애인을 위한 디자인이었다. 그의 눈에 들어온 건 ‘일반’이라는 단어였다. 그 단어가 수화 상담을 일반적이지 않은 상담으로 만들었다. 배려가 차별이 된 순간이다. 현재 신한은행의 ATM의 버튼의 일반 상담은 ‘영상 상담’으로 바뀌어 있다. 당연하게 여긴 것을 당연하지 않게 바라본 일화다.
왜 인간에게는 그런 고민이 필요한가?
때로 UX에 대한 고민은 잘 드러나지 않는다. 분명 누군가는 영상 상담으로의 변화에 감탄하고 만족했을 것이다. 그러나 이를 모르고 무심히 지나간 이들도 많을 것이다. 그럼에도 프로덕트에, 나아가 우리 삶에 UX가 필요한 이유는 뭘까. 때로는 미세한 이 변화를 통해 우리는 어떤 혜택을 누리고 살아가는 것일까.

최초의 상업 영화라 불리는 <열차의 도착>. 사람들은 영화라는 기술에 적응하지 못해 기차가 등장하자 달아나기 시작했다(자료=indiewire)
“기술에 대한 두려움을 없애줍니다. 수십만 년 동안의 진화를 통해 만들어진 인간의 인식 시스템은 인류의 끝자락에 탄생한 디지털을 받아들일 준비가 되지 않았습니다. 1895년 최초의 상업 영화인 <열차의 도착>이 상영될 때, 극장의 사람들은 도망쳤습니다. 화면 밖으로 기차가 넘어 오지 않는다는 확신이 없었으니까요. 이처럼 인간에게 축조된 인식 시스템과 디지털 사이에 존재하는 간극. 그걸 줄이는 게 UX를 통해 인류가 얻는 혜택입니다.”
연이어 진 팀장은 셔터의 플래시가 인간의 영혼을 빼앗는다는 생각에 카메라를 두려워한 인디언을 이야기 한다. 우리는 더 이상 카메라에 영혼을 빼앗길까 두려워하지 않는다. 인식의 간극을 좁힘으로써 두려움이 유용함이 된다. UX는 불을 손에 쥐고 온 프로메테우스를 인간 스스로 구현하는 일 같다.
“앞으로 어떤 새로운 기술이 나와도 그럴 겁니다. AI도 그렇고요. UX에 대한 고민이 기술과 인간의 간극을 줄일 겁니다. 기업은 그 과정에서 좋은 서비스를 구현해 인간의 삶에 깊숙이 들어설 수 있을 거고요.
공감해야 한다. 동시에 편향을 경계한다
학문의 일환에서 순간 UX가 보다 거대한 개념으로 읽힌다. 인류라는 배가 나아가는 속도를 생각해 본다. UX는 빠른 물살에서 표류와 항해를 구분짓는 노 같다. 그 일을 25년 했다. 발전하려면, 다시 말해 잘 하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했을까. 진 팀장은 ‘삶에 대한 관찰’을 말한다.
‘쓴 택시비가 없네요.’ 과거 6개월 간 미국과 유럽으로 연수를 떠났던 진 팀장이 정산담당자에게 들은 말이다. 그는 6개월간 택시를 타지 않았다. 택시를 타는 순간 이동은 이동에 그친다. 삶을 관찰할 시간이 부재하다. 그래서 걷고, 버스를 타고, 전철을 탔다. 그곳의 삶을 관찰하고 학습하기 위해. 진 팀장에게 UX를 위한 자세란 그런 것이다. “스마트폰만 보면 안돼요.” 진 팀장이 웃었다.
관찰은 재료 같다. 그렇다면 재료를 어떻게 사용해야 할까.
“공감해야 합니다. 사용자 중심 디자인니까요. 사용자의 삶에 이입할 수 있어야 합니다. 공급자의 입장이 돼버리는 건 너무 쉬워요. 인지과학에서 배운 건 사람은 불완전하다는 겁니다. 내가 믿는 게 생기고, 내 아이디어가 정답인 것처럼 보입니다. 그럼 사용자에 대한 공감이 희석되기 시작합니다.”
하지만 어떤 일이든 최소한의 고집은 필요하지 않은가? 고집과 아집. 한 끗 차이 같다.
“요즘 가장 많이 하는 고민입니다. 저도 인간이니 편향이 존재할 테니까요. 그래서 조직이 있는 거라고 생각합니다. 앞서 UX를 다제학적인 학문이라고 이야기했죠? 다양한 생각이 모이고, 조직에서 이를 수렴해 판단해야 합니다. 동시에 데이터도 봐야 하겠죠.”
이 일은 해야만 하는 일이다
이렇게 최선을 다해, 진심으로 하는데, 어떻게 보면 UX라는 게 무형의 가치에 대한 고민과 탐구 같기도 하다. 이 고민에 대한 성과를 어떻게 측정할 수 있을까.
“성과 측정에 대한 생각은 명확합니다. 하지 말자. 은행원의 친절을 돈으로 따지면 얼마일까요. 호텔의 조명을 가는 일, 백화점의 인테리어를 하는 일. 그게 있으면 당연히 좋다는 일에 우리는 점수를 매기지 않습니다. 지표는 있죠. 평점이라던가, 전환율이라던가. 근데 그걸 따지기 시작하면 그 외의 것들이 무시가 돼요. 불편하게 사용자를 가둬놓고 나가지 못하게 하면 체류율은 높겠지만, 그게 좋은 UX는 아닌 것처럼요.”
그렇다면 성과가 없어도, 필요에 대한 의구심에 부딪혀도, 이 일은 해야만 하는 일일까.

진 팀장 앞에 놓인 노트가 빼곡하다. 그는 UX에 대한 고민으로, 우리가 분명 매일 더 나아지고 있다는 확신을 품고 일하고 있다(사진=디지털 인사이트)
“해야만 하는 일입니다. 사람에 대한 일이니까요. 기업에도 도움이 될 수밖에 없습니다. 100% 확신해요. 사용자를 얻기 위해서는 그들의 마음을 얻어야 하니까요. 이미 우리는 UX에 대해 고민하는 20여 년의 시간 동안 나아졌습니다. 계속해서 나아지고 있습니다. 그렇게 믿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