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공서비스디자인의 재발견] 수요자 중심의 혁신을 가져오는 디자인 기술 - 이성혜, 월간지방자치
[공공서비스디자인의 재발견] 수요자 중심의 혁신을 가져오는 디자인 기술
오랜 옛날 구석기시대의 우리 선조들은 자연에서 주은 돌로 땅을 파고 사냥을 하며 살고 있었다. 그러던 어느 날 누군가가 혁신적인 일을 도모하기 시작했는데, 이는 자연의 돌을 손에 편리하게 쥐고 사냥을 할 수 있도록 날카롭게 날을 만들고 끝을 뾰족하게 한 ‘다기능 연모 주먹도끼’를 만든 일이다. 한 때 고고학자 핼럼 레너드 모비우스(1907~1987)가 ‘모비우스 라인’을 주장하며 지역적 우열을 슬그머니 드러냈던 ‘주먹도끼’가 경기도 연천군의 한탄강변 전곡리에서 우연히 발견되어 고 인류학의 정설로 여겼던 이론을 뒤집은 것으로 잘 알려졌다. 이렇듯 인류가 만들어 낸 최초의 혁신적 도구 ‘주먹도끼’는 똑똑한 인간의 기준으로까지 평가 되었다.
그 이후에도 인간은 현실에 안주하지 않고 끊임없이 혁신 에 도전하며 삶을 편리하고 행복하게 해 주는 도구를 만들며 현재에 이르고 있다. 우리의 디지털 삶을 바꾼 혁신의 핵심 원천이라고 모두가 인정하는 스티브 잡스에 이르기까지 인류 의 혁신에 대한 도전은 이 순간에도 계속되고 있다.
산업 혁명 이후, 공급이 수요를 넘어서게 된 순간부터 기업들은 이윤의 극대화를 위해 필사적으로 노력했다. 초 기에는 생산관리에 초점이 맞춰졌고 자연스럽게 조직관 리가 주요 이슈가 되었다가 전략적 사고 및 마케팅으로 더욱 고도화되었고,‘맞춤 경영’이라는 이름의 고객중심 시대의 품질 만족에 이어 최근에는 고객 경험의 가치 창 출이 대두되면서 수요자에 대해 더욱 더 깊은 관심을 갖기 시작했다.
모든 산업 및 공공분야에서 혁신수단으로써 서비스의 가치가 증대하고 있으며, 서비스 분야에 IT 및 네트워크 기술이 적극적으로 도입되면서 서비스 산업은 양적·질적으로 크게 성장함과 동시에 그 중요성과 복잡성이 더욱 증가되고 있다. 공급자 위주의 제품이나 서비스로는, 그것이 아무리 뛰어난 신기술로 무장하였다고 하더라도 고객의 지갑을 기꺼이 열게 하는 일이 점점 더 어려워졌고, 이러한 일련의 변화는 서비스 혁신을 위한 새로운 방법과 분야에 대한 요구로 이어졌다. 고객들은 서비스를 통해 총체적이면서도 통합적이며 서비스·제품과의 세부적인 상호작용뿐만 아니라 그들의 감성까지 세심하게 배려되길 원하게 되었다. 고객의 요구가 더욱 복잡하고 다양해졌으며 그 수준이 계속해서 높아지고 있는 것이다.
고객의 욕구와 요구의 변화는 ‘인간의 행동은 만족하지 못한 욕구를 채우는 것을 목표로 하는데, 기본적인 욕구가 채워 지면 인간은 상위욕구를 채우려 하며 상위욕구는 하위욕구가 충족될 때 동기요인으로서 작용한다’는 에이브러햄 매슬로우(Abraham Maslow)의 욕구 단계설 이론을 뒷받침해주는 현상이기도 하다.
또한, 일본의 노리아키 카노(Noriaki Kano)교수가 1984년에 발표한 품질 경영의 대표적인 마케팅 모델인 KANO 모델에서의 주장도 일맥상통한다고 볼 수 있다. KANO 모델은 기능의 충족/불 충족과 고객의 만족/불만족을 두 축으로 하여, 충족되거나 초과되어도 고객이 만족하지 못하지만 충족되지 않았을 경우에는 불만을 일으키는 최소한의 요구사항인 ‘기본 품질(Must-Be)’, 성능이 높은 경우 만족을 가져오고 낮은 경우에는 불만족을 야기하는‘성능 품질 (Performance)’, 고객에게 전달 될 경우 만족이 높아지고 차별적 감동 포인트가 되는‘감동 품질(Attractive/WoW)’로 구분될 수 있다고 설명한다. 기본 욕구 충족에 대한 당연한 고객인식 뿐만 아니라, 다각적인 매력을 지닌 감동에 대한 고 객의 욕구를 충족하여야 한다는 필연적 현상에 대해 설명하고 있는 것이다.
고객의 사회적 프로파일의 변화는 어찌 보면 당연한 일이다. 이미 우리는 제조 생산 산업에서 서비스 산업의 시대로 진입하였고 제품과 서비스의 융복합이라는 거창한 말이 아니더라도 모든 산업 및 공공분야에서 혁신수단으로써의 서비스에 대한 가치가 증대되고 있는 것은 사실이다. 이러한 일련의 변화는 서비스 혁신을 위한 새로운 방법에 대한 요구로 이어졌다.
요즘 기업에서 고객 경험을 중시하며 수요자 중심의 혁신을 가져오는 디자인 기술로 급부상하고 있는 분야가 바로 ‘서비스디자인’ 분야이다.
‘서비스디자인’이란 단순히 지금까지 우리가 알고 있던 친절한 미소와 무엇인가를 더하여 주는 의미로 통용되었던 ‘서비스’와 그저 아름답고 보기에 좋은 의미로 통용되었던 ‘디자인’의 개념이 합쳐진 합성어는 아니다. 좀 더 적극적이고 확장된 개념이다.
서비스디자인은 기존의 서비스연구 분야와는 달리 처음부터 결과물의 분야나 형태를 정하지 않고 총체적인 접근(Manifestation independent approach)을 한다는 점, 서비스와 연관된 고객의 세밀하고도 심도 있는 감성 및 행동을 통합적인 관점에서 파악 할 수 있는 방법의 적용, 파악된 결과를 디자인에 이르는 수준까지 유·무형의 서비스로 구체화· 실체화한다는 점에서 기존의 서비스혁신과 관련된 타 분야와는 차별화 된다고 할 수 있다.
(사)한국서비스디자인협의회(www.servicedesign.or.kr)는 ‘서비스디자인’에 대해, ‘고객이 서비스를 통해 경험하게 되는 모든 유·무형의 요소(사람, 사물, 행동, 감성, 공간 등) 및 모든 경로(프로세스, 시스템 등)에 대해 고객 중심의 맥락적인(Contextual) 리서치 방법을 활용하여 이해관계자간에 잠재된 요구를 포착하고 이것을 창의적이고 다학제 적·협력적인 디자인 방법을 통해 실체화(Embodiment)함으로써, 고객 및 서비스 제공자에게 효과적이며 매력적인 서비스 경험을 만드는 방법 및 분야를 의미한다’고 정의하고 있다.
결코 짧게 표현할 수 없는 서비스디자인의 정의에서도 엿 볼 수 있듯이 고려 사항과 방법이 많이 있고 그 결과물도 명확하지는 않지만, 분명한 사실은 서비스 제공자는 고객에게 최상의 매력적인 감동을 전달해주어야 한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이 시대를 살고 있는 고객이라는 이름의 수요자 가 공공 서비스에 바라는 마음은 무엇일까? 민간 부문과 공공 부문에 대해 정확한 이중적 잣대를 가지고 판단할까? 결코 그렇지는 않을 것이다.
김석준 저서인《뉴 거버넌스 연구》를 참조하여 재정리해 보면 공공부문의 패러다임의 변화도 기업의 변화와 발전의 단계와 유사하다. 정책 집행의 수준으로 공·사 부문이 없는 단순 행정 수준인 ‘관리 단계’, 전반적인 업무에 대한 강력한 중앙집권과 통제의 효율성을 강조한 대중 행정 ‘편리 단계’, 품질에 대한 만족 및 고객 중심의 효과성을 강조한 맞춤 행정 이라 불리는 ‘만족 단계’, 그리고 고객경험 가치 창출 및 이미 지 관리(브랜드화)의 창의성이 강조되는 창조행정이라 불리는 ‘경험 단계’의 순으로 정의될 수 있다.
공공 서비스디자인 패러다임의 변화
수요자 중심의 공공 서비스디자인은 사회 공동체가 신뢰와 네트워크라는 사회규범을 바탕으로 이해관계자들의 공통의 과제를 해결함으로써 지속 가능한 발전에 집중하고 사회적 자본으로 축적되어 국민 모두의 삶의 질을 향상시키는 긍정적인 효과를 가져 올 수 있다는 점에서 매우 유용하다고 할 수 있다(이소정, 숙명여대대학원 산업디자인과 석사 논문 ‘공익을 위한 서비스디자인 연구’참조).
수요자 중심의 공공 서비스디자인은 정부와 같은 비영리 조직이 주체가 되어, 사적 영역의 이윤 창출보다 공동체 삶의 질 향상을 목적으로 하여 사회 공동의 문제를 해결하거나 목적을 달성 하기 위한 ‘공공성’, 상호 협동과 이익의 공유로 장기간 지속될 수 있도록 하는 ‘지속 가능성’, 시민들의 자발적 참여가 원동력이 되는 ‘시민 참여’라는 공공서비스디자인의 요소를 만족시켜야 한다.
특히 민간 기업이나 공공분야 모두에게서 나타나는 ‘고객 중심’을 위해서는 공공서비스의 공급자인 행정주체 중심에서 수요자인 국민 중심의 공공서비스로의 패러다임의 변화가 필연적인 상황이다. 그간의 공공디자인의 여러 성과물이 매슬로우의 기본 욕구나 KANO 모델의 Must-be 기본품질을 충족시키는 수준이었다면, 이제는 수요자 중심의 공공 서비스디자인으로 고도화하여 고객인 국민 모두의 상위 욕구의 동기요인이 되어 매력적인 감동 만족을 이끌어 내야 한다.
공공 서비스디자인 요소의 만족도 증진과, 더 나아가 국민 에게 최상의 매력적인 감동을 제공할 수 있는 디자인 기술인 ‘서비스디자인’에서 제안하는 핵심 사항은 아래와 같다.
1. 고객의 전체적인 ‘문맥(Context)’의 심도있는 이해가 필요하다. 감정, 기분, 정서와 같은 요소들이 오히려 ‘원하고, 느끼는’ 인간 존재의 본질 규명에 더 부합되기 때문이 라는 빌헬름 딜타이의 해석학적인 접근이 필요하다. 범죄자를 잡기 위한 프로파일러가 범행 장소에 오랫동안 머물며 그 시간대의 온갖 소리들과 바람의 느낌마저 그 상황에 대입해 보며 범죄자의 마음속에 들어감으로써 범행의 실마리를 찾을 수 있듯이, 우리는 고객의 마음을 읽기 위해 그들의 행동을 세밀하게 관찰하는 맥락적인 조사 방법을 사용해야 한다.
2. 고객과 고객이 경험하는 제품 및 서비스와 관련 있는 ‘이해관계자들과 협업’하여야 한다. 이를 위해 하버드 비즈니스 리뷰에서 처음 주장된 Co-Creation의 디자인적 접근 방법이 활용 될 수 있다. 이해관계자와의 협업은 눈에 보이는 무대의 앞쪽 뿐만 아니라 눈에 보이지는 않지만 그것이 수행되기 위해 일어나는 전체적인 조직까지 모두 아우르는 무대 뒤쪽의 이해관계들이 추구하는 가치에 대하여 정의함으로써, 각각의 이해관계자들의 목적에 부합할 수 있는 가치를 창출하는 일이 가능케 하는 첫 번째 수단이며 좀 더 적극적인 의미의 혁신에 가까이 갈 수 있는 핵심적인 방법이기 때문이다.
3. 이해관계자들에 대한 서로 다른 가치에 대해 정의하고 재정리하는 과정은 ‘지속가능한’ 서비스 시스템 개발을 가능하게 한다. 특히 공공디자인의 고도화를 위해 필수적으로 필요한 이 과정에서는 지속 가능한 관리 및 운영 시스템을 함께 제공할 수 있는 서비스디자인의 ‘서비스 블루 프린트’*가 매우 유용하게 활용 될 것이다.
※ 서비스 블루프린트(Service Blueprint) : 서비스가 실행되는 전반적인 과정에서 고객과 서비스 제공에 관련된 모든 이해관계자 간에 일어나게 되는 다양한 활동을 종합적으로 파악할 수 있도록 시각화하는 방법.
우리가 인생을 살아가면서 지식을 습득하는 것도 중요한 일이지만 아는 대로 행동하기란 얼마나 어렵고 힘든 일인가? 그럼에도 우리는 전 인생을 통해, 다음 세대에 물려줄 사회 문화적 기반을 위해 지속적으로 노력해야 한다. 이 노력은 단순히 ‘혁신’ 또는 ‘창의’라는 글씨가 쓰인 포스터에서만 얻어질 수 있는 일은 아니다. 국민을 위한 ‘민원 서비스’가 오히려 공무원에게 새로운 시도와 혁신적인 움직임을 방해하는 요소가 된다면 그것은 이미 본질에서 벗어난 형식적인 서비스로 일시에 전락하는 것과 크게 다르지 않다.
마지막으로 오랜 시간을 투자하며 노력해야 할‘수요자 중 심의 혁신을 위한 공공서비스디자인’에 대한 우리의 자세를 니체의 말로 대신하고자 한다.
“우리가 심연을 들여다보면 심연도 우리를 들여다보고 있다”
출처: https://designdb.com/?menuno=1278&bbsno=2858&siteno=15&act=view&ztag=rO0ABXQAOTxjYWxsIHR5cGU9ImJvYXJkIiBubz0iOTg4IiBza2luPSJwaG90b19iYnNfMjAxOSI%2BPC9jYWxsPg%3D%3D#gsc.tab=0